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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한석규는 궤변론자가 아니다 [인터뷰]
2019. 12.25(수) 11:00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석규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석규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언뜻 보면 궤변론자 같다. 그러나 편견을 거둬내고 바라보니 한석규는 궤변론자가 아닌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지닌 천상 배우였다.

작품 홍보를 위한 인터뷰 자리에서 한석규는 작품보다는 '사람'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는 인터뷰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나면 뭘 써야 하나 퍽 난감했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한석규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니 그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연기하는 배우이기에 그다지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길 원했었던 것이다.

26일 개봉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한석규는 어김없이 첫마디부터 배우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급기야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의 생애에 대해서 줄줄이 말하기 시작해 일순간 현장을 당황함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왜 세종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석규가 '천문: 하늘에 묻는다' 세종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원경 왕후였기 때문이다. 고려 명문가에서 태어난 원경왕후는 남편이 이방원이 형제들을 죽이고 태종이 되기까지 친정의 힘을 동원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태종이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원경왕후의 동생 네 명을 모두 죽이고, 이로 인해 그의 친정아버지인 민 씨가 화병으로 죽기까지 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원경왕후는 울분에 찬 말년을 보내야 했다.

한석규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이어 또다시 세종을 연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 속 세종이 아버지 태종의 잔악함을 닮지 않으려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속에 살던 인물이라면,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속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석규는 역사에 효자로 기록될 만큼 원경왕후에 대한 효심이 남달랐던 세종이 모친의 비극을 지켜보며 자신이 왕이 됐을 때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극 중 세종이 장영실(최민식)과 함께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연구한 이유가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해석했다.

한석규는 이에 대해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세종은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신하들이 말 안 듣는 사람들은 그냥 죽여라, 살려봐야 골치만 아프다는 논조를 펼칠 때 세종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과학 관련 일을 한다고 설명은 안 했을 것이다"고 자신이 상상한 세종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경왕후의 영향으로 그 어떤 사람도 살리고 싶었고, 그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구현하는데 장영실은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본건 똑같이, 아니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닌 장영실은 세종에게 신분이 어떠하든 귀인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위해 한석규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종의 감정선을 만들어내 연기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조선의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자 했던 세종은 관노 출신인 과학자 장영실과 함께 명나라의 지배를 벗어난 독립적인 천문 사업을 시작한다.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분의 최정점인 왕이 천민, 그것도 백정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관노 출신 장영실을 지근거리에 두고 총애했던 건, 세종에게 중요한 건 신분이 아닌 자신의 꿈을 함께 이룰 동반자인 장영실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대부들의 강한 반발을 얻는다. 이를 시기한 사대부들은 세종과 장영실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그들을 변종 취급한다. 급기야 명에 두 사람이 하려는 일을 밀고하기에 이른다. 한석규는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자신과 최민식의 관계에서 많은 부분 가져와 연기했다. 한석규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선택의 연속인데 무슨 기준이나 반응으로 선택하게 되는 걸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미쳤네'라고 한다. 그런데 민식이 형은 '석규야 내가 생각할 때 이러저러해서 그런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다"라고 말했다.

안여 사건으로 세종과 장영실을 둘러싼 정치 싸움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에도, 두 사람은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한석규와 최민식도 그랬다. 함께한 작품보다 함께 하지 않은 작품이 더 많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믿음이 있었다. 서로의 연기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지만, 연기라는 공통분모로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속 세종과 장영실의 모습과 많은 부분 닮아있었다.

닮은 부분이 많아서인지 스크린 속 한석규와 최민식은 세종과 장영실 그 자체다. 신분을 뛰어넘어 같은 꿈을 꾼 지기였던 세종과 장영실의 모습에서 연기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두 사람이 겹쳐 보이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한석규의 이야기를 듣고 곱씹어 보니 감동이 배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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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하늘에 묻는다' 뿐만 아니라 매 작품마다 연기에 있어서는 늘 안정된 신뢰감을 주는 한석규의 연기 원동력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고와 이해에서 비롯됐다. 이는 한석규가 배우라는 직업을 생각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다. 한석규는 "20대 때는 배우는 남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남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남을 만드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결국엔 연기는 내 생각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서는 결코 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내가 하는 상상력 바운더리 안에서만 사고하고 연기를 하는 거니까. 결국 내 연기가 좋아지려면 내가 좋아져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자신의 사고 경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연기라는 깨달음은 사고의 확장을 위해 한석규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그 생각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서 더 외연을 넓혀갔고, 이는 지금 우리가 여러 작품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한석규의 연기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나에게 있어서 연기는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말하는 한석규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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